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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Anna의 『백귀야행(百鬼夜行)』

글쓴이 Lina Ha() 2017년 08월 14일

우리는 책을 통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보고, 상상합니다. 그 상상은 때론 현실과의 경계를 아슬하게 넘나들며 짜릿함과 재미, 감동을 선사하기도 하는데요. 오늘 추천해드릴 책은 좀 특별합니다. 무한한 상상력과 집중력 없이는 볼 수 없는 제 3세계의 이야기. Design Lab, Anna 주임님이 강력히 추천하는 만화책 ‘백귀야행(百鬼夜行)’입니다.


만화책 백귀야행 1편 표지

  • 백귀야행(百鬼夜行) 
  • 이마 이치코/ 시공사
  • 1999. 3. 15 발행
  • 전 25권







이마 이치코(今市子). 이름만 들어도 “아!” 하는 분들 있을 텐데요. 잔잔하고 독특한 스토리텔링과 디테일한 그림체가 인상적인 일본의 만화가입니다. 그녀는 일본 아사히신문출판의 만화잡지 ‘네무키(ネムキ)’에 ‘백귀야행(百鬼夜行)’을 연재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비슷한 장르의 여러 단편집을 출간하며 국내에서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난해하고 복잡한 줄거리 탓에 이 작가의 작품을 볼 때만큼은 ‘쉽고 단순하게 즐기는 것이 만화’라는 편견을 버리고 여러 번 정독해야 합니다.

무섭기보다 기묘한 상상의 세계

‘백귀야행’은 세상의 존재가 아닌 자들을 볼 수 있는 주인공 이이지마 리쓰를 중심으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다룬 만화입니다. ‘퇴마’라고 하기에는 뭔가 본격적이지 않고, ‘공포, 스릴러’라 하기에도 아쉬움이 있습니다. 등장인물도 비범한 능력을 갖췄거나 뛰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남들과 다른 것을 보는 감각이 예민할 뿐 요괴나 귀신을 보면 피해 다니기 급급합니다. 주인공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요괴들도 하나같이 어설프고 방해만 될 뿐이죠.

백귀야행 1-5편 표지

그런데도 이 만화가 주는 가장 큰 매력은 요괴와 인간 사이의 균형과 공존에 대해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요괴를 절대악으로 규정한다거나, 요괴와 인간의 특별한 우정을 그리는 식의 선악 구분으로 풀어내지 않습니다. 산 자와 망자, 낮과 밤, 현실과 꿈, 현재와 과거 등 대립적인 접점에서 주인공 리쓰가 사건에 개입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기묘하고 잔잔하게 그려낼 뿐입니다.
비슷한 소재의 만화인 ‘펫숍 오브 호러스(아키노 마츠리)’나 ‘세상이 가르쳐 준 비밀(하츠 아키코)’과 같이 초현실적인 존재 혹은 사물에 얽힌 이야기가 주는 두려움과 호기심을 즐기는 독자라면 이 책 또한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불친절한 매력에 빠지다

작가 특유의 진지한 그림체나 다소 불친절한 스토리 진행 방식, 1995년부터 현재까지 아주 느리게 연재되고 있다는 점까지. ‘백귀야행’은 여러모로 입문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첫 도전에 실패하고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은 후에야 작품에 빠져들 수 있었으니까요.

만화책 내 이미지한때 만화책을 패스트푸드처럼 빨리, 최대한 많이 소비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만난 후로 한 작품을 오랫동안 곱씹어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종종 이야기의 흐름을 꼬아버리는 작가의 불친절한 연출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복습을 통해 이야기의 단서를 찾고,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보니 후련하고 뿌듯하기까지 했습니다. 한 권당 약 세 편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된 작품으로, 읽고 나면 단편 영화 세 편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요. 그만큼 매력 넘치는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순정만화계의 상위클래스 도약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만화책을 섭렵한 저에게도 한 번의 좌절을 안겨줬을 정도로 진입장벽이 높은 작품인 만큼, 순정만화에 일가견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도전해보면 좋겠습니다. ‘독특한 순정만화가 보고 싶은데, 날이 더우니 조금 오싹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마 이치코의 '백귀야행’을 보세요. 제가 강력히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