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 블록체인 컨퍼런스 참석 후기
최근 암호화폐(Cryptocurrency)와 이를 거래하기 위한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2009년 비트코인(Bitcoin)이 처음 등장한 이후 암호화폐는 실물 화폐를 대체할 수단으로 꾸준히 주목을 받아 왔는데요.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서는 얼마 전 이롭게 칼럼에서도 설명 드린 바 있죠.
세계 곳곳에서 신규 암호화폐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가운데 중국 등에서는 본격적인 규제 움직임도 시작됐습니다. 새로운 결제 수단이자 투자처로서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은 어떠한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요? 과연 지금의 비트코인 광풍은 한 순간의 바람으로 지나갈까요?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에 능통한 전문가들이 모였습니다. 지난 12월 7일, 코엑스에서 열린 ‘스파크랩 암호화폐 블록체인 컨퍼런스’ 내용을 함께 보시죠.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
세미나 내용을 보기 전, 알아둬야 할 용어들이 있습니다. 우선 ‘암호화폐’는 암호학에 기반해 만들어져 안전한 거래가 가능하도록 매개하는 디지털 화폐로서,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돈입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비트코인, 이더리움(Ethereum) 등 약 1,200여 종 이상의 암호화폐가 있습니다. 이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연산문제(암호)를 푸는 ‘채굴(Mining)’ 작업이 필요하죠. 소유한 암호화폐는 은행과 같은 기관의 개입 없이 거래, 투자까지 온라인 거래소에서 P2P(Peer to Peer, 개인 간) 방식으로 직접 이뤄집니다. 채굴과 거래 내역은 개인에게 분산되어 공개된 장부, 즉 블록체인에 저장되죠.
더불어 일반 기업이 자본을 모으기 위해 주식거래소에 상장하고 주식을 투자자들에게 파는 것처럼, 기업은 개발 중인 새로운 암호화폐 분배를 약속하고 기존의 암호화폐로 투자를 받는데, 이를 ‘ICO(Initial coin offering, 가상화폐공개)’라고 합니다. ICO는 신규 기업이 투자금을 모으는 데에 효과적인 방법으로 주목 받고 있지만, 공개 후 암호화폐의 가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위험도 있습니다. 이에 사기 및 투기에 대한 우려로 현재 중국과 한국 등에서는 ICO 규제 조치가 내려진 바 있습니다.
핵심적인 용어만 설명했는데도 참 어렵고 복잡하죠. 배경 기술과 지식에 대한 허들이 높아 암호화폐 대중화가 더디다는 의견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최근 높은 관심에 힘입어 국내 암호화폐 1일 거래량은 코스닥 하루 거래량을 웃돌 만큼 시장이 커지고 있는데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암호화폐의 미래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세션1.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분야 투자의 미래
첫 세션에서는 비영리 디지털 화폐 결제 플랫폼인 Stellar 재단의 CEO Joyce Kim, ICO 자금 조달 플랫폼 CoinList의 공동창업자 Brian Tubergen, IOC 기반 투자은행 아르곤 그룹(Argon Group)의 전무이사 Elliot Han이 연사로 나와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분야의 투자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세 사람은 하나같이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이해도 높은 개발자와 사용자가 많은 한국 시장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에서 관련 기업이 늘고 있고, 마케팅 또한 공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암호화폐에 투자하기 적합한 환경이라고 평했는데요. Brian은 블록체인 거래를 감당할만한 어플리케이션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현재 국내 시장의 여건이 훌륭한 편이라는 의견을 보탰습니다.
Joyce는 이러한 국내 분위기가 암호화폐로 눈을 돌리고 있는 실리콘밸리와 유사하다며, 점차 블록체인 기술의 중요성을 깨달은 국가들의 성장 노력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현재 블록체인 관련 기업은 대부분 미국에 집중이 되어 있지만, 산업이 발전하고 있는 동남아, 금전 거래의 어려움을 암호화폐로 대체할 수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활발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Elliot 역시 국경의 제한이 없는 ICO가 개발도상국이나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 펀드라이징 등에 획기적인 투자 모델로 떠오를 수 있다며 차세대 크라우드 펀딩 모델의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이미 거래와 투자가 활발한 유럽과 스위스, 홍콩 등에 비해 아시아 국가들의 규제가 늘고 있는 점은 산업이 위축될 수 있는 요소로 꼽혔습니다. 각 국가마다 제 각각인 규제정책으로 소규모 투자와 통합된 시장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건데요. 현재 경쟁이 심화되면서 암호화폐의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고 버블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보다 개방적인 정책으로 투명한 기술 발전을 유도하는 것이 전체 산업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었습니다.
세 사람은 마지막으로 현재 가치가 요동치는 암호화폐의 가격이 아니라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집중, 그리고 이해를 강조했습니다. 과열된 버블현상도 현재의 분위기가 진정되면 꺼질 것이기에 이를 통해 한탕을 기대하기 보다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의 도입 의의인 ‘배분(Distribution)’의 의미를 다시 되새길 것을 주문하며 세션을 마쳤습니다.
세션2. 혁신가들을 만나다: 암호화폐, 블록체인 분야의 창업가들
두 번째 세션에서는 암호화폐 거래 및 ICO를 지원하는 애플리케이션 개발 업체 SettleMint의 CEO Matthew Van Niekerk과 블록체인 기반 신용 인프라를 구축하는 Dharma Labs의 CEO Nadav Hollander의 좌담이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대출금을 암호화폐화 하면 기존보다 저렴한 이자로 대출 가능하다는 점에서 P2P 형태의 거래 방법이 소규모 투자자 및 사업가들에게 매력적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워낙 기반 기술과 지식이 고난도라서 이해하고 뛰어들기에는 어려움이 따르는데요. Matthew와 Nadav는 바로 그런 이들에게 필요한 기술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창업가로서의 자부심을 느낀다고 합니다.
엔지니어링 관점에서 블록체인 시스템을 꾸리는 것과, 금융기관에서 이를 실제 적용하는 데에 대한 여러 고민도 들을 수 있었는데요. 머지 않은 미래에 모든 화폐가 암호화폐로 대체될 거라는 전망 아래, 미성숙한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는 분야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고 두 사람은 강조했습니다. 또한 계속 발전하는 시스템으로 금융 투명성 역시 보장할 수 있을 거라는 말에서 신규 창업가로서의 비전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션3. 암호화폐의 창시자들을 만나다
마지막 세션에서는 산업 초기 비트코인 최대 거래소였던 Mt.Gox의 CTO이자 Ripple과 Stellar의 공동 창업자 Jed McCaleb, 알리바바 등에서 블록체인 기술 개발 경력을 쌓은 뒤 중국 최대 암호화폐 기업 중 하나인 Qtum을 창립한 Patrick Dai의 대화가 진행됐습니다.
P2P 파일 공유 시스템 eDonkey의 창립자이기도 한 Jed는 비트코인 출범 초기 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사업성을 무시했고, 이후 오랜 공부 끝에 유망함을 깨달아 2010년 거래소인 Mt.Gox를 설립했다고 합니다. 투명하게 운영되지만, 채굴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비트코인의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이후 Ripple과 Stellar를 설립했죠. 그는 현재 열풍 속에 잊혀진 초기 블록체인의 정신을 여러 번 강조했는데요. 탈중앙화(Decentralize)를 지향하는 기술로서 공평하게 배분하고, 누구나 사용 할 수 있는 쉽고 투명한 시스템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스템 운영과 P2P 방식에 대한 사용자의 충분한 이해가 수반될 때, ICO의 버블현상이 사라지고 블록체인으로 공평한 세상을 이루겠다는 모두의 목표 또한 실현될 것이라는 의견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중국은 현재 전 세계 암호화폐 중 70%가 채굴되고 있고, 법적 금지 조치가 내려지기 전까지 전 세계 거래량의 90%에 달하는 거래가 이루어졌던 암호화폐 최대 시장이었는데요. 대표적인 암호화폐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강점을 합친 하이브리드 암호화폐 퀀텀(Qtum)을 개발한 Patrick은 중국에서 암호화폐 채굴이 폭발적 인기를 모은 원인으로 비교적 저렴한 전력과 인건비를 꼽았습니다. 현재 중국과 한국 등에서 ICO가 금지되었지만 그는 세계적인 거래 흐름에 따라 이러한 규제도 완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요. 더불어 높은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고 화폐 공급의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비트코인을 개발한 나카모토 사토시처럼, 퀀텀 역시 기술 혁신을 통해 더 가벼운 네트워크 시스템으로 화폐의 균형을 잡아주는 기술을 완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이번 세미나의 가장 큰 화두를 두 가지 꼽는다면, 단연 ‘분배’와 ‘규제’였습니다. 연사들은 입을 모아 업계 성장을 위한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는데요. 그를 위해 투자자와 사용자들이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도입 정신인 분배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 또한 여러 번 강조됐습니다.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이 적은 저에게는 단순히 새로운 투자 도구로 생각했던 암호화폐와 비트코인 시스템이 여러 경제적, 윤리적, 사회적 고민 끝에 태어났으며, 지금도 개선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매일 ‘비트코인 최고가 경신’, ‘ICO 전면 금지’ 등 자극적인 뉴스로 시끄러운 가운데 과연 이 기술이 누구와 무엇을 위해 생겼는지, 그로 인해 어떠한 미래가 가능할지 함께 생각하고 고민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