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온라인 게임은?
요즘 온라인 게임을 하면 거대한 오픈월드, 실시간 레이드, 마이크로트랜잭션, 심지어 메타버스까지 등장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막 태동하던 시절, 그래픽도, 사운드도, 화려한 UI도 없이 순수한 텍스트만으로 즐기는 온라인 게임이 있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지금의 MMORPG, 온라인 멀티플레이어의 시작은 한 줄 한 줄 글자로 그려지는 상상력의 게임에서 출발했다. 그 이름은 바로 MUD(Multi-User Dungeon). 오늘은 세계 최초의 온라인 게임, 그 기원과 진화를 탐험해본다.
컴퓨터로 던전을 탐험하다: MUD의 등장
1978년, 영국 에섹스 대학교(University of Essex)의 대학원생 로이 트루브쇼(Roy Trubshaw)는 자신이 좋아하던 테이블탑 롤플레잉 게임 “던전스 앤 드래곤즈(D&D)”를 컴퓨터 안에서 구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유닉스 서버 상에서 ‘MUD1’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이 게임은 여러 사용자가 동시에 접속해 텍스트로 모험을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 “당신은 어두운 동굴에 서 있습니다. 앞에는 두 개의 문이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갑니까?”
이런 식으로 플레이어는 키보드로 명령어를 입력하고, 시스템은 그에 맞는 스토리와 결과를 텍스트로 반환했다. MUD1은 단순히 혼자 즐기는 게임이 아니었다. 여러 명이 같은 가상 공간에 접속해, 서로 대화하고, 협력하고, 싸우는 최초의 멀티플레이어 게임이었다.
왜 ‘던전’이었을까?
당시 컴퓨터 게임은 대부분 혼자 즐기는 퍼즐이나 아케이드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MUD는 ‘이야기’를 공유하고, ‘세계’를 함께 탐험한다는 점에서 게임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던전이라는 공간은 제한된 컴퓨터 메모리와 상상력을 결합하기에 적합했다. 플레이어는 키보드 명령어만으로도 방을 탐험하고, 괴물과 싸우고, 아이템을 발견하며 세계를 확장할 수 있었다. 이런 텍스트 기반 인터페이스는 오늘날 챗봇이나 인터랙티브 픽션 장르의 조상으로도 평가된다.
MUD의 확산과 파생 게임들
MUD1의 성공 이후, 다양한 버전과 변종이 등장했다.
- MUD2: 로이 트루브쇼의 후계자 리처드 바틀(Richard Bartle)이 개발
- AberMUD: 웨일스 아버리스트위스 대학에서 개발된 MUD
- DikuMUD: 덴마크 개발자들이 제작, 이후 다양한 MUD 게임의 기반 엔진이 됨
MUD는 유럽과 미국 대학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퍼지며 프로그래머, 학생, 연구자들의 “밤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 게임의 확산은 곧 장르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텍스트 기반 MUD는 이후 그래픽 기반 MMORPG의 시초가 되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리니지, 메이플스토리… 모두 MUD의 후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왜 텍스트로 충분했을까?
“왜 굳이 텍스트로?”라고 묻는다면, 당시 컴퓨터 환경을 떠올려야 한다.
- 모뎀 속도: 300bps~1200bps
- 그래픽 카드: X
- 메모리 용량: 64KB~256KB
그래픽을 전송하거나 구현할 수 없는 환경에서 텍스트는 가장 빠르고, 가장 상상력을 자극하는 표현 수단이었다. 플레이어들은 단어 몇 줄에 몰입했고, 서버에는 수십 명이 동시에 접속해 글자 속 가상세계를 공유했다.
MUD가 남긴 유산
MUD는 단순한 게임을 넘어 “온라인 커뮤니티”의 시초로 평가된다. 채팅, 롤플레잉, 협동, 경쟁… 이 모든 요소가 MUD 안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MMORPG뿐 아니라 디스코드, 메타버스, 온라인 RPG 커뮤니티 등 다양한 형태의 온라인 상호작용은 모두 MUD에서 뻗어 나왔다.
“당신은 모퉁이에 선다. 북쪽, 남쪽, 동쪽 중 어디로 갈 것인가?” 단순한 문장 하나로 시작된 모험은 수많은 사람들의 가상 세계 탐험의 첫걸음이었다. 가장 오래된 온라인 게임 MUD는 그래픽 하나 없이도 수백, 수천 명을 몰입시켰고,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 메타버스의 조상으로 남았다. 그리고 여전히 오늘날에도, 일부 MUD 서버는 열려 있다. 아직도 텍스트로 이루어진 세계가 존재하며, 그곳에서 누군가는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