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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아이폰 이전, 스마트폰은 이미 존재했다?

2025년 06월 20일

스마트폰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 작은 기기로 우리는 소통하고, 검색하고, 촬영하고, 은행업무까지 처리한다. 심지어 “주머니 속의 슈퍼컴퓨터”라 불리는 이 기기는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의 역사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아이폰? 안드로이드? 아니다. 그 시작점은 1994년, IBM이 만든 ‘Simon Personal Communicator’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모바일 혁명의 조용한 서막이었다.


전화기? PDA? 둘 다!

1992년 미국 컴댁스(Comdex) 박람회에서 한 흥미로운 프로토타입이 공개되었다. 바로 IBM이 개발하고 벨사우스(BellSouth)가 협력한 Simon Personal Communicator(이하 Simon)였다.

Simon은 당시의 휴대전화와 비교해도 거대한 크기였지만, 전화 기능뿐 아니라 메모, 주소록, 캘린더, 팩스, 이메일 등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 기능을 함께 탑재한 첫 번째 기기였다. 이전까지 전화기와 PDA는 별개의 기기였다. Simon은 두 장르를 하나로 결합해, 오늘날 스마트폰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기기였다.

“전화도 되고, 메모도 되고, 이메일도 된다? 이게 가능해?”

당시로선 상상조차 힘든 일이었기에 사람들은 놀라워하면서도 “너무 비싸고, 너무 크고, 너무 미래적”이라고 평가했다.

스펙과 기능

Simon은 아래와 같은 사양을 갖추고 있었다.

- 4.5인치 모노크롬 LCD 터치스크린

- 160x293 해상도

- 스타일러스 입력 지원

- 1MB RAM, 1MB 저장공간

- 니켈 카드뮴 배터리 (평균 1시간 연속 사용)

- 팩스, 이메일 송수신 지원

- 메모장, 계산기, 일정표 기본 앱 내장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제한적이지만, 1990년대 기준으로는 획기적인 올인원 디바이스였다. 무엇보다 Simon은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물리적 키패드에 의존하던 당시의 디지털 기기들과 차별성을 보였다.

상업적 성과는?

Simon은 1994년 8월부터 11개월간 판매되었으며, 전 세계 5만여 대가 팔렸다. 수치는 미미했지만, “전화기 + PDA + 이메일 + 팩스”라는 복합적 개념은 미래 스마트폰 시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되었다. 하지만 가격(약 900달러, 현재 가치로 약 1800달러), 거대한 크기, 제한된 배터리 성능 때문에 대중적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시대를 앞서간 기기

Simon이 실패한 이유는 단순한 기술적 한계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인프라—데이터 네트워크, 모바일 이메일 환경, 무선 인터넷—가 부족했기에 “너무 앞서간 기기”로 평가받았다.

“Simon은 미래에서 온 전화기였다. 하지만 그 미래를 뒷받침할 환경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결국 Simon의 기능들은 이후 Palm Pilot, 블랙베리, 아이폰으로 계승되며 스마트폰의 형태로 진화했다.

IBM Simon이 남긴 유산

오늘날 Simon은 스마트폰의 기원으로 공식 기록되며 스미스소니언 박물관과 다양한 IT 역사 전시회에서 전시되고 있다. 터치스크린, 앱, 전화기능 통합, 모바일 컴퓨팅… Simon이 제시한 청사진은 스마트폰의 기본 뼈대가 되었고, 지금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기기의 시발점이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되는 스마트폰. 하지만 그 시작은 불편하고, 무겁고, 빠르게 배터리가 닳는 기계였다. IBM Simon은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스마트폰 혁명의 출발선에 이름을 새긴 기기였다. 그리고 이 작은 ‘미래적 전화기’는 모바일 혁명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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